다 같이 지쳤는데, 나는 마감 시간만 기억하고 있었다
스키장 라운지에서 장비 반납 알람이 울려, 쉬던 사람들을 깨운 썰
빌린 장비를 늦게 돌려주고 싶지 않아 반납 알람을 맞췄다. 스키를 마치고 라운지에서 쉬다가 그 알람이 울렸을 때, 내 일정을 챙기는 소리가 다른 사람의 휴식을 끊고 있다는 걸 알았다.
넨네 편집팀 ·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오랜만의 여행이라 뭐든 잘 챙기고 싶었다
친구들과 스키장에 간 건 몇 년 만이었다. 날짜를 맞추는 데만 여러 주가 걸려서 출발 전부터 괜히 책임감이 생겼다. 나는 예약 내역과 준비물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고 일정이 정리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한 편이었다. 친구들은 덕분에 편하다고 했다. 그 말이 좋아서 내가 피곤하다는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고 계속 다음 일을 확인했다.
장비를 빌릴 때 반납 시간과 장소를 다시 물었다. 처음 와보는 곳이라 라운지에서 반납하는 곳까지 얼마나 걸릴지 감이 없었다. 안내받은 시간을 휴대폰에 적고 여유를 두어 알람도 맞췄다. 늦으면 다 같이 급해질 것 같았다. 친구 한 명은 자기가 길을 기억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이 나눠 기억하는 것보다 내 휴대폰에 넣어두는 편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스키를 타는 동안에는 휴대폰을 넣어뒀다. 잘 타는 친구를 따라가려다 숨이 찼고 쉬운 곳에서 몇 번 더 연습했다. 친구는 기다려줬지만 나는 계속 붙잡는 것 같아 조금 미안했다. 오후가 되니 다리가 무거워졌다. 그만 타고 쉬어도 된다는 말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는 여행에서도 내가 먼저 피곤하다고 하면 분위기를 끊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망설였던 것 같다.
슬로프에서 나온 뒤 장비와 짐을 정리하고 휴게 라운지에 앉았다. 따뜻한 음료를 한 모금 마시자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풀렸다. 친구는 창가에 기대 눈을 감았고 다른 친구는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봤다. 가까운 자리에도 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반납 알람을 맞춰뒀으니 잠깐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내 눈꺼풀도 천천히 무거워졌다.
내가 일어날 시간에 옆자리도 함께 움직였다
눈을 감은 지 얼마나 됐는지 몰랐다. 익숙한 알람 소리가 나자 몸이 먼저 일어났다. 휴대폰을 쥔 채 잠들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옆에 내려놓은 가방 안에 있었다. 장갑과 목도리를 밀어내며 화면을 찾았다. 친구가 어깨를 들썩이며 눈을 떴고 근처 사람도 자세를 바꿨다. 피곤해서인지 소리는 평소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소리를 끈 뒤에도 귀에는 멜로디가 조금 남아 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이제 반납하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친구 한 명이 자기 시계를 보더니 아직 충분히 남았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내가 길을 찾고 짐을 챙기는 시간까지 넉넉하게 잡은 알람이었다. 급한 것처럼 일어나 있던 내 모습이 민망해졌다. 쉬던 사람들을 깨워놓고 당장 뛰어갈 일도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니 변명하는 것 같았다. 근처 자리에는 작게 사과했다.
친구는 자기도 한번 시간을 확인해두겠다며 나보고 조금 더 쉬라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하려다가 다리가 너무 무겁다고 말했다. 오늘 처음으로 피곤하다는 말을 입 밖에 냈다. 친구는 자기도 그렇다며 웃었다. 반납 시간을 놓치지 않는 사람 역할에 혼자 들어가 있었던 것 같았다. 실제로는 모두 같은 곳에서 빌린 장비를 들고 있었고, 누구든 시간을 같이 챙길 수 있었다.
잠에서 깬 얼굴들을 보니 라운지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른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기다리는 사람도, 먼저 운동을 끝낸 사람도 있을 수 있었다. 내가 시간을 챙겨야 하는 만큼 그 사람들에게는 잠깐 쉬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주변이 대화가 있는 공간이라고 해서 어떤 소리든 상관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알람은 듣는 사람이 자기 신호인지 잠깐 확인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장비 반납 시간을 함께 기억할 사람은 있었는데, 나는 혼자 깨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납 시간도 휴식도 혼자 책임질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바로 뛰어나가는 대신 먼저 짐을 점검했다. 친구가 반납 장소로 가는 길을 확인하고 나는 빠뜨린 물건이 없는지 봤다. 역할을 나누니 내가 처음 계산한 시간보다 덜 걸릴 것 같았다. 반납 마감 전에 실제로 필요한 시간을 같이 정해두면 알람을 몇 개씩 겹쳐둘 필요도 줄었다. 친구는 처음부터 이렇게 하면 됐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며 웃었지만 속으로는 조금 후련했다.
다음 여행에는 쉬는 시간과 이동 시간을 함께 적기로 했다. 미리 정한 계획이더라도 상황에 따라 바꾸고 누구라도 피곤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준비를 맡았다는 이유로 내 휴식까지 뒤로 미뤘다. 알람이 잘 울리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부족한 것은 서로 상태를 묻는 말이었다. 혼자 깨서 모두를 챙기는 장면만 상상하지 않아도 여행은 충분히 굴러갔다.
넨네는 스키를 다 마치고 안전하게 쉬는 장소에서 개인 알림을 받고 싶을 때 살펴봤다. 슬로프에서 이어폰으로 신호를 받으려는 계획은 아니었다. 라운지 안내와 내 휴식 방식에 맞을 때만 준비해두고, 설정과 연결은 쉬기 전에 확인하려 했다. 당일 필요한 알람만 남겨두는 것도 같이 했다. 반납 시간을 챙기는 이유가 쉬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깨우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친구들과 있을 때는 나만 알아야 하는 신호인지도 한 번 생각한다. 모두 같이 움직일 일정이라면 출발할 시간을 미리 말하고 서로 확인하는 편이 나을 수 있었다. 각자 쉬다가 따로 일어나는 시간에는 조용한 개인 신호가 더 잘 맞을 수 있었다. 같은 알람 하나로 모든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으니 선택이 쉬웠다. 무엇보다 일정표에 쉬는 시간을 넣고도 눈치 보는 마음이 조금 줄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피곤하다는 말도 같이 나눴다
장비는 여유 있게 반납했다. 창구에서 확인을 받고 나서야 종일 들고 있던 작은 긴장이 풀렸다. 친구는 다음에는 점심을 더 일찍 먹자고 했고 다른 친구는 오후에는 조금 덜 타도 좋겠다고 했다. 나는 잠깐 앉아 쉬는 시간을 처음부터 잡자고 말했다. 다들 바로 동의했다. 내가 끝까지 즐거운 표정을 해야만 유지되는 여행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왜 그렇게 늦게 확인했는지 모르겠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누가 제일 많이 넘어졌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반납 담당이라며 알람에 벌떡 일어났던 일도 나왔다. 친구가 그때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고 해서 웃었다. 민망함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한 실수 하나로 여행이 정리되지는 않았다. 도와달라는 말을 조금 더 일찍 했으면 좋았겠다고 하자 친구는 다음에 자기에게도 일을 주라고 했다.
다음 약속을 잡을 때 나는 준비 목록을 혼자 완성해서 보내지 않았다. 누가 무엇을 볼지 먼저 물었다. 생각보다 답이 빨리 왔다. 식당을 알아보겠다는 사람과 이동편을 확인하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쉬는 공간과 시간을 살펴보겠다고 했다. 휴식이 다른 일을 끝낸 뒤 남는 칸이 아니라 우리가 같이 준비할 일 중 하나가 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여행 전부터 조금 덜 피곤한 기분이었다.
그 라운지를 떠올리면 하얀 창밖보다 알람에 잠깐 움찔하던 친구의 얼굴이 먼저 생각난다. 다음에는 내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누군가의 휴식 끝을 대신 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반납 시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쉴 방법을 미리 고르면 된다. 그리고 그 준비를 내가 전부 혼자 할 필요도 없다. 같은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피곤하다고 말하는 일도, 꽤 쓸 만한 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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