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손을 쓸 수 없는 순간에 울린 소리
미용실에서 머리 감는 중 알람이 울렸는데, 수건에 싸여서 끌 수도 없었던 썰
눈 위에는 수건이, 목 아래에는 샴푸대가 있었다. 가방에서 울리는 알람을 끄려면 휴대폰이 어디 있는지부터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야 했다.
넨네 편집팀 ·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예약을 두 개 잡으면 하루를 잘 쓰는 줄 알았다
토요일 오전에 미용실을 예약하고 오후에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평일에 미뤄둔 일을 하루에 끝내고 싶어서 시간을 붙여 잡았다. 머리를 다 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물었을 때도 대략적인 시간만 들었다. 이동 시간까지 계산하면 빠듯하긴 했지만, 늦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휴대폰에 출발 준비 알람을 하나 넣어두니 그 뒤로는 일정이 정리된 것 같았다.
미용실에 도착해서는 이어폰으로 듣던 방송을 멈추고 가방을 의자 옆에 뒀다. 디자이너와 길이를 이야기하고 사진을 찾아 보여줬다. 오늘 다른 약속이 있다고 말할까 하다가 재촉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만뒀다. 아직 시간도 있었고 내가 알람을 맞춰뒀으니 알아서 확인하면 된다고 여겼다. 휴대폰은 다시 가방 앞주머니에 넣었다.
시술 중에는 거울 속 내 모습과 직원들의 손을 번갈아 봤다. 가끔 옆자리 손님이 웃으면 나도 따라 표정이 풀렸다. 잠깐 기다리는 동안 이어폰을 다시 썼고, 알람도 음악처럼 내 귀로만 들릴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소리가 어디로 나오는지 따로 시험하지는 않았다. 샴푸실로 이동할 때는 이어폰까지 빼서 가방에 넣었다.
샴푸대에 누우니 목을 받치는 부분이 생각보다 편했다. 직원이 물 온도를 물었고 나는 좋다고 했다. 눈 위에 작은 수건이 올라왔다. 따뜻한 물 소리가 나자 시간을 계산하던 마음도 잠깐 멎었다. 가방은 직원이 옆 선반에 올려뒀다. 나는 그 위치를 보지 못한 채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끝나겠다고 생각했다. 손은 덮개 아래에서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다.
일어나지 못하는데 내 휴대폰은 나가자고 했다
물이 잠깐 멈춘 사이 익숙한 멜로디가 들렸다. 처음에는 매장 음악이 바뀐 줄 알았다. 그런데 같은 구간이 반복됐고 직원이 손을 멈췄다. “손님 휴대폰일까요?” 그 말을 듣고서야 출발 알람이 떠올랐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직원이 아직 거품이 남아 있다며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고, 다시 누운 순간부터 얼굴이 뜨거워졌다.
“제 가방 앞주머니에 있어요.” 눈을 가린 채 설명했는데 내가 말한 앞쪽과 직원이 보는 앞쪽이 달랐다. 작은 주머니냐는 질문에 지퍼가 두 개라고 답했다. 내 물건을 남에게 찾게 하는 것만으로도 민망한데 소리는 계속 났다. 가방 안에는 영수증과 충전선도 섞여 있었다. 평소 대충 넣어둔 물건의 위치를 말로 설명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휴대폰을 찾은 직원이 화면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나는 수건 때문에 볼 수 없었다. 결국 눈 위 수건을 잠깐 치우고 화면을 확인했다. 물기 있는 손으로 받아도 될지 망설이자 직원이 마른 수건을 더 가져왔다. 알람 하나 때문에 샴푸의 순서가 여러 번 끊겼다. 옆 샴푸대에서는 다른 손님이 머리를 헹구고 있었다. 그 사람까지 기다리는 기분이 들어 자꾸 죄송하다고 말했다.
소리가 멎자 샴푸실이 원래보다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 직원은 괜찮다고 하고 다시 물을 틀었다. 나는 약속에 늦을까 걱정하던 사람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빨리 사라지고 싶은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누구도 나를 나무라지 않았는데 혼자 변명할 말을 찾았다. 이어폰으로 들릴 줄 알았다는 말은 이어폰을 이미 빼놓은 가방 앞에서 꺼내기도 이상했다.
알람을 끄는 데 필요한 건 손가락 하나인 줄 알았다. 그날은 다른 사람의 손과 설명 몇 문장까지 필요했다.
급한 일정은 알람보다 먼저 말했어야 했다
자리로 돌아오니 아직 머리를 말리는 과정이 남아 있었다. 출발 알람이 울렸다고 곧바로 일어설 수 있는 일정이 아니었다. 나는 그제야 친구에게 조금 늦을 수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는 천천히 오라고 했다. 그 짧은 답장을 보고 힘이 빠졌다. 미리 할 수 있었던 연락을 미루느라 매장 안에서 괜한 소란을 만들고, 나 자신도 한참 조급해져 있었다.
디자이너에게 다음 약속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얼마나 더 걸릴지 안내해줬고 나는 그 시간을 친구에게 다시 전했다. 처음부터 이야기했더라면 가능한 시간을 함께 계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재촉처럼 들릴까 봐 숨겨둔 일정이 오히려 갑작스러운 재촉으로 나타났다. 상대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는 것과 빨리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늦게 배웠다.
그날 알람 설정도 다시 봤다. 무음이나 이어폰 연결만으로 내가 원하는 출력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면 안 됐다. 특히 샴푸를 받을 때는 이어폰을 빼야 했고 휴대폰에 손을 뻗기도 어려웠다. 나만 듣는 알람이 있어도 그 순간의 자세와 시술을 대신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시간을 챙기는 방법은 내가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태인지까지 보고 골라야 했다.
집에 와서는 넨네를 이어폰과 연결해 짧게 시험했다. 대기하면서 방송을 듣는 때에는 내게만 시간 신호를 주는 방법이 편했다. 대신 샴푸실로 이동하기 전에는 남은 타이머를 정리하기로 했다. 기기를 쓰지 않는 구간에는 직원이 알려주는 순서를 따르고, 다음 약속에는 여유를 두는 편이 맞았다. 한 가지 설정으로 방문 전체를 처리하려던 생각을 바꿨다.
다음 예약에는 끝나는 시간보다 여유를 먼저 넣었다
다음에 미용실을 잡을 때는 곧바로 다른 약속을 붙이지 않았다. 시술에 걸릴 수 있는 시간을 먼저 물었고, 끝난 뒤 이동할 시간도 따로 남겨뒀다. 예약표에 빈칸이 조금 생겼지만 하루가 덜 아깝지는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계속 시계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머리를 하러 와서 쉬는 기분을 느끼는 데에도 일정의 여백이 필요했다.
매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오늘 켜진 알람부터 확인했다. 이어폰을 쓰고 기다릴 때 필요한 신호만 남겼다. 샴푸실로 부르면 방송을 멈추는 김에 타이머도 봤다. 귀에서 기기를 빼는 행동과 알람을 확인하는 행동을 같이 하니 잊을 일이 줄었다. 가방은 휴대폰이 어느 주머니에 있는지 알 수 있게 정리했다. 다른 사람이 찾아줘야 할 상황 자체를 줄이고 싶었다.
다시 샴푸대에 눕자 지난번 장면이 떠올랐다. 수건 아래에서 가방 지퍼를 설명하던 내 목소리까지 생각나 혼자 조금 웃었다. 이번에는 물소리가 멈춰도 다른 소리가 끼어들지 않았다. 직원이 괜찮냐고 물으면 온도나 목의 위치만 이야기하면 됐다. 머리를 감는 짧은 시간이 원래 이렇게 단순한 일이었구나 싶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편안함이 있었다.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자 다들 비슷한 경험을 꺼냈다. 네일을 말리느라, 치과 의자에 누워 있어서, 양손에 짐을 들어서 알람을 못 껐다는 이야기였다. 휴대폰이 내 것이라고 늘 내가 바로 조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 뒤로 일정을 정할 때는 몇 시에 울릴지만 보지 않는다. 그때의 내 손과 몸이 어디에 있을지도 한번 떠올려본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아도 끝나는 하루
그날 친구와는 예정했던 카페 대신 근처 다른 곳에서 만났다. 약속은 조금 바뀌었고 결국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큰 문제가 생긴 날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샴푸실에서 흘렀던 몇 초는 오래 기억에 남았다. 내가 만든 시간표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간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알람 하나를 끄려고 누군가 하던 일을 멈춰야 했다는 사실이 민망함의 가운데에 있었다.
이제 손을 쓰기 어려운 서비스를 받으러 가면 휴대폰을 치우기 전에 필요한 알람부터 살핀다. 없어도 되는 알람은 미루거나 끄고, 시간 제한이 있다면 시작 전에 말한다. 그 정도 준비만으로 매번 같은 설명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직원에게 내 휴대폰 사용법을 알려주는 대신, 오늘 받고 싶은 서비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도 좋았다.
나만 듣는 소리가 도움이 되는 구간도 있고, 아예 소리를 준비하지 않는 편이 자연스러운 구간도 있었다. 그 차이를 알아두니 이어폰 알람도 필요한 자리에서 편하게 쓸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알람을 많이 마련하는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신호를 받았을 때 내 일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도록 앞뒤 시간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니 남에게 건넬 부탁도 줄었다.
머리를 다 말리고 거울을 볼 때 이번에는 시간을 먼저 찾지 않았다. 앞머리 길이를 확인하고 뒤쪽 모양도 천천히 봤다. 계산을 마치고 나서 가방을 직접 열어 휴대폰을 꺼냈다. 내 손으로 내 물건을 꺼내는 평범한 행동이 유난히 반가웠다. 다음 약속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오늘은 누군가 내 출발 시간을 대신 들어주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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