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90분 전
조별 과제 회의 전에 잠들어
단체 채팅방이 난리 난 썰
자료도 대본도 다 챙겼는데, 정작 발표자 한 명이 과방 소파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한 명이 저였습니다.
그 학기 조별 과제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다섯 명의 공강이 한 번도 겹치지 않아 회의는 늘 저녁이었고, 발표를 사흘 앞두고서야 슬라이드의 순서가 정해졌다. 나는 마지막 부분 발표와 최종 파일 정리를 맡았다.
발표 전날에도 새벽 두 시까지 대본을 고쳤다. 단체 채팅방에는 문장 하나를 바꿀 때마다 새 파일이 올라왔고, 누군가는 표의 글자가 작다고 했고, 누군가는 결론이 약하다고 했다. 모두 맞는 말이라 고치다 보니 잠잘 시간만 줄었다.
발표 당일 첫 수업이 끝난 뒤 리허설까지는 한 시간 반이 남아 있었다. 카페에 가면 자리를 찾느라 시간을 쓸 것 같아 과방으로 갔다. 점심시간이 막 지나 소파 하나가 비어 있었고, 선배 둘은 구석에서 이어폰을 낀 채 과제를 하고 있었다.
나는 노트북을 충전기에 꽂고 발표 파일을 다시 열었다. 혹시 글꼴이 깨질까 봐 다른 형식으로도 저장하고, 대본을 휴대폰에 내려받고, 팀원에게 “두 시 반까지 세미나실로 갈게”라고 보냈다.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딱 20분만 쉬면 목소리도 덜 잠기고 발표할 때 정신이 맑을 것 같았다. 휴대폰 알람을 맞추면서도 여러 번 시간을 계산했다. 알람이 울린 뒤 물을 사고, 계단을 내려가 세미나실까지 걸어가도 15분은 남았다.
문제는 알람을 소리 없이 진동으로만 맞춘 일이었다. 과방에서 큰 소리가 나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것 같았고, 소파 팔걸이에 휴대폰을 올려두면 진동만으로도 충분히 깰 거라 생각했다. 이어폰은 귀에 꽂고 있었지만 평소 알람이 어디로 나오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처음 몇 분은 주변 소리가 계속 들렸다. 키보드 소리, 복도에서 웃는 소리,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사이로 팀원들이 발표 순서를 묻는 메시지를 보내는 진동도 느낀 것 같았다. 답해야지 생각한 다음 순간부터 기억이 끊겼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휴대폰 화면을 가득 채운 부재중 전화였다. 진동하던 휴대폰은 소파 틈으로 미끄러져 쿠션 아래에 끼어 있었다. 시간은 리허설 시작보다 12분이나 지나 있었다.
단체 채팅방에는 “어디야?”, “파일 네가 갖고 있지?”, “전화 좀 받아”가 차례로 쌓여 있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평소 제일 차분하던 팀원이 보낸 “우리 일단 네 파트 빼고 맞춰 볼게”였다. 그 문장이 잠을 가장 빨리 깨웠다.
나는 노트북 충전선을 제대로 감지도 못한 채 가방에 밀어 넣고 뛰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팀원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숨이 차서 문장이 자꾸 끊겼다. 발표 자체에 늦은 것은 아니었는데도 이미 팀의 시간을 혼자 써 버렸다는 생각에 얼굴이 뜨거웠다.
조별 과제에서는 내 20분이
팀원 네 명의 20분이 되기도 합니다.
늦게 시작한 리허설
시간을 지키는 것도 맡은 일의 일부였다
세미나실 문을 열자 팀원들은 발표 화면 대신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화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진짜 무슨 일 난 줄 알았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 말을 듣자 지각했다는 민망함보다 연락이 끊겨 걱정시켰다는 미안함이 더 컸다.
파일은 공유 폴더에도 있었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수정한 버전은 아직 내 노트북에만 있었다. 내가 늦잠을 잔 12분 동안 팀원들은 이전 파일을 열어 달라진 페이지를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준비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연락까지 안 되면 작은 지각도 크게 번진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우리는 쉬는 시간을 줄여 리허설을 두 번 했다. 내 차례에는 긴장해서 첫 문장을 두 번이나 틀렸다. 팀원 한 명이 물을 건네며 “이제 왔으니까 됐어”라고 했지만, 발표가 끝날 때까지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다행히 실제 발표는 별문제 없이 끝났다. 교수님의 질문에도 함께 답했고 점수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학기 말에 그 과제를 떠올리면 좋은 점수보다 단체 채팅방에 쌓여 있던 부재중 전화가 먼저 생각났다.
그 뒤로 팀 일정 전에는 두 가지를 바꿨다. 최종 파일은 작업할 때마다 바로 공유 폴더에 올렸고, 잠깐 쉬더라도 이어폰으로 알람이 실제 들리는지 먼저 시험했다. 알람 하나에만 기대지 않고 팀원에게도 몇 시에 움직일지 미리 남겼다.
이어폰 알람을 쓰니 과방의 조용한 분위기를 깨지 않으면서도 진동보다 확실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다만 배터리와 음량, 이어폰 연결 상태를 확인하는 일까지 알람 설정의 일부로 생각하게 됐다. 준비가 끝났다는 표시를 누르는 것과 실제로 깰 수 있는 준비는 달랐다.
요즘도 밤샘 뒤 공강이 생기면 과방 소파가 누구보다 반갑다. 이제는 쉬는 시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 다른 사람의 일정과 연결되어 있는지 먼저 생각한다. 조별 과제에서 신뢰는 거창한 희생보다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걸, 그날 12분 늦게 배웠다.
이 글은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넨네
잠깐 쉬어도 괜찮도록,
팀과의 시간은 놓치지 않도록.
회의와 발표 사이 짧은 휴식에는 내 귀에만 들리는 알람으로 약속한 시간을 지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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