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의 끝에서
막차에서 깜빡 졸았다가 종점까지 간 썰
집 앞 정류장만 지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뜨자 버스에는 나와 기사님만 남아 있었다.
집 앞까지 여섯 정거장
그날은 퇴근이 늦었다. 가게 셔터를 내리고 분리수거를 마친 뒤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갔더니, 집 쪽으로 가는 막차가 막 신호를 받고 있었다. 손을 크게 흔들었고 기사님이 문을 다시 열어 주셨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온몸의 힘이 풀렸다. 하루를 버티게 해 준 마지막 교통수단에 겨우 올라탔다는 안도감이었다.
빈자리는 뒤쪽 창가에 하나 있었다. 앉아서 창문에 비친 얼굴을 보니 눈 밑이 어둡고 머리카락도 눌려 있었다. 휴대폰으로 경로를 열어 보았다. 우리 집 근처 정류장까지 여섯 정거장, 대략 십몇 분. 그 정도라면 가방을 무릎에 올리고 잠깐 눈을 감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버스 안에는 앞쪽에 두 사람, 뒤쪽에 나 한 사람뿐이었다.
알람을 맞출까 하다가 손이 멈췄다. 늘 쓰던 휴대폰 알람은 소리가 컸다. 한밤중의 조용한 버스 안에서 갑자기 벨소리가 울리고, 내가 급히 화면을 더듬는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 진동으로 바꿔 두자니 버스가 흔들리는 동안 무릎 위 가방 속 휴대폰이 떨리는 걸 알아챌 자신이 없었다. 결국 지도 화면을 한 번 더 본 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처음 두 정거장은 기억난다. 문이 열릴 때 들어오던 차가운 공기와 카드를 찍는 소리도 들렸다. 세 번째쯤에는 고개가 저절로 창 쪽으로 기울었다. 차창에 이마를 부딪치지 않으려고 자세를 고쳐 앉았는데, 바로 그 뒤의 기억이 없다. 스스로는 눈만 감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버스는 내가 세지 않는 사이에도 정류장을 지나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창밖에는 익숙한 상가 대신 차고지 담장이 보였다. 실내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기사님이 거울로 뒤쪽을 살펴보고 있었다. “종점입니다.” 그 말을 듣고도 몇 초 동안 이해가 안 됐다. 급히 지도를 켜니 우리 집 정류장은 이미 여러 개 뒤에 있었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알람 소리는 울리지 않았지만, 그 대신 버스 한 대의 끝까지 와 버린 셈이었다.
돌아가는 길이 더 길었다
차에서 내리자 밤공기가 유난히 차가웠다. 맞은편에 돌아가는 버스가 있을 줄 알았는데 막차 시각이 이미 지나 있었다. 택시를 부를지 걸을지 계산하다가, 기사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생각났다. 버스가 출발할 때 그제야 고개를 숙였다.
집까지 걸어가면 삼십 분이 넘었다. 낮이었다면 대수롭지 않았겠지만 그 시각에는 인도에 사람도 거의 없었다. 가방 끈을 다시 고쳐 메고 밝은 큰길을 따라 걸었다. 중간에 편의점 불빛이 보일 때마다 잠깐씩 멈춰 서서 지도를 확인했다. 집 앞까지 여섯 정거장이라고 생각했던 거리가 발로 돌아가려니 꽤 멀었다.
걸으면서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몇 분만 더 정신을 차렸으면 됐는데, 알람 한 번 맞추지 못해 이 밤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곧 반대의 생각도 따라왔다. 버스가 조용해서 알람을 안 맞춘 것은 분명했다.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던 마음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그 마음 때문에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막차에는 작은 변수가 많다. 정류장 간격이 일정하지 않고, 도로가 비어 있으면 예상보다 빨리 달릴 때도 있다. 시간만 보고 정확히 내릴 곳을 맞추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도착 예상보다 몇 분 일찍 나만 들을 수 있는 알람을 받아 눈을 뜬 뒤, 남은 정류장을 직접 확인했다면 종점까지 갈 일은 줄었을 것이다.
집에 도착해 신발을 벗자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피곤해서 잠든 일을 탓할 마음은 없었다. 그날처럼 몸이 지친 밤에는 의지만으로 깨어 있으려는 다짐이 제일 먼저 무너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졸지 말자고 버티는 게 아니라, 졸더라도 돌아올 시간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다음 날에도 생각난 밤길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는 같은 노선의 반대 방향 버스를 탔다. 어젯밤에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정류장 이름이 차창 밖으로 하나씩 지나갔다. 평소에는 이어지는 동네라고 생각했는데, 걸어서 돌아왔던 길의 구간마다 전혀 다른 느낌이 남아 있었다. 편의점이 있는 큰 사거리, 가로등이 끊기는 짧은 인도, 공사 중이라 돌아가야 했던 모퉁이가 눈에 들어왔다.
동료에게 어젯밤 종점까지 갔다고 말하자 그는 웃다가 “막차였으니 돌아오기 힘들었겠다”고 했다. 나도 웃었지만 걸어오는 동안 택시가 잡히지 않을까 몇 번이나 휴대폰을 들여다본 기억이 있었다. 도착 시간을 조금 놓친 것과 돌아올 교통수단이 사라진 것은 다른 문제였다. 막차에서 졸음이 쏟아질 때에는 평소보다 더 일찍 눈을 떠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에 휴대폰 기본 알람을 이어폰에 연결한 채 시험해 봤다. 이어폰에서는 음악이 나왔지만 알람은 휴대폰 스피커에서도 울렸다. 그날 버스에서 무심코 기본 알람을 설정했더라면 조용히 일어났을 거라는 내 상상은 틀릴 수도 있었다. 연결 표시 하나만 보고 끝낼 일이 아니었다. 실제 사용할 알람이 어디로 나오는지 확인해야 했다.
이어폰으로 소리를 보내는 타이머를 찾고 나서도 바로 막차에서 잠들지는 않았다. 낮에 짧은 시간을 맞춰 두고 소리를 들어 봤다. 이어폰을 뺐을 때는 어떻게 되는지, 배터리가 얼마 남았는지, 알림이 너무 약하지는 않은지도 봤다. 귀에 너무 크게 들리면 놀라서 버스 안에서 허둥댈 테니 음량도 낮췄다. 작은 준비인데도 한번 해 두니 다음번에는 손이 덜 망설여졌다.
버스 정류장은 시계의 눈금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구간은 신호가 많고 어떤 구간은 막힘 없이 지나간다. 그러니 ‘집까지 십오 분’이라는 예상은 내릴 시각이 아니라 한 번 깨서 현재 위치를 볼 시각으로 쓰는 편이 맞았다. 그 차이를 알기 전까지 나는 알람을 목적지에 정확히 내려 주는 기능처럼 생각했다.
또 잠든 사이 가방을 놓치지 않게 몸 가까이 둬야 하고, 주변 상황을 살필 귀도 남겨 둬야 한다. 막차 안에서 깊이 잠드는 것을 권할 수는 없다. 내가 원한 것은 피곤한 몸을 조금 쉬게 하면서도 정류장 안내를 다시 볼 틈을 얻는 정도였다. 그래서 이어폰 알람은 잠을 허락하는 면허증보다는, 무거워진 눈꺼풀 사이에 한 번 끼워 넣는 확인 신호에 가까웠다.
그날 밤길이 아주 특별한 사고였던 것은 아니다. 버스가 종점에 도착했고, 나는 걸어서 집에 왔다. 하지만 흔히 있는 실수라서 더 오래 기억한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누구나 한 번쯤 하는 ‘몇 분만 눈 감자’가 막차에서는 다른 결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발로 배웠다.
다음 막차에서 바꾼 순서
며칠 뒤 비슷한 시간에 다시 버스를 탔다. 그날도 자리는 창가에 하나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앉자마자 내릴 정류장과 예상 시간을 확인했다. 이어폰 배터리를 살피고 실제로 연결됐는지도 화면에서 확인했다. 알람은 집 앞 정류장에 닿기보다 조금 이른 시각으로 맞췄다. 소리가 이어폰에만 나는지 짧게 시험한 뒤 음량도 낮췄다.
한쪽 귀는 주변 안내를 들을 수 있게 두고 눈을 감았다. 버스가 정류장마다 멈추는 느낌은 여전히 흐릿했고, 한동안은 잠든 건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귀 가까이에서 작은 알림이 들렸다. 주변 사람을 놀라게 할 만큼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내게는 다시 눈을 뜰 이유가 됐다. 휴대폰을 보니 목적지까지 아직 두 정거장이 남아 있었다.
그때부터는 창밖 표지판과 버스 안 안내를 살폈다. 알람이 정류장 이름을 대신 알려 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놓치기 전에 다시 살펴볼 시간을 벌어 주었다. 집 앞에서 내렸을 때 버스는 평소처럼 떠났고, 나는 평소처럼 횡단보도 앞에 섰다. 너무 평범한 귀가라서 오히려 좋았다.
이후에는 도로가 막히거나 이어폰 연결이 불안정한 날이면 아예 눈을 감지 않는다. 알람도 교통 상황까지 알아서 맞춰 주는 약속은 아니니까. 다만 조용한 막차에서 잠깐 쉬고 싶은 날, 스피커를 울릴까 걱정하다 아무 준비도 안 하는 선택은 더는 하지 않는다.
넨네
막차의 마지막은 내가 정하고 싶어서
이동 중 잠깐 쉴 때는 이어폰 연결을 확인하고, 내릴 곳보다 여유 있게 알람을 맞춰 보세요. 실제 정류장 안내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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