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 시간은 내 것인데 신호는 칸막이를 넘었다
만화카페에서 이용 시간 끝나기 전에 일어나려다, 옆자리까지 알람을 들려준 썰
만화책 몇 권 읽고 20분만 쉬려던 오후였다. 추가 요금을 피하려고 맞춘 알람이 낮은 칸막이 너머까지 울리고 나서야, 내 자리가 방음되는 방은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넨네 편집팀 ·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책 한 권만 더 읽다가 잠깐 눕기로 했다
비가 오던 주말에 혼자 만화카페에 갔다. 밖에서 돌아다니기에는 애매하고 집에 바로 들어가기는 아쉬웠다. 몇 시간 이용권을 고른 뒤 안쪽 자리에 앉았다. 낮은 테이블과 쿠션이 있었고 몸을 조금 기대기에도 편했다. 휴대폰 대신 종이책을 넘기고 싶던 날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몇 권 골라 옆에 쌓아두니 작은 방을 빌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제법 부지런히 읽었다. 한 권을 덮고 다음 권을 펼칠 때마다 시간을 조금씩 확인했다. 따뜻한 음료를 마시고 배가 부르자 집중이 느슨해졌다. 같은 칸을 두 번 읽고도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쿠션에 고개를 기대고 눈만 잠깐 감으면 다시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서는 미루던 낮잠이 여기서는 이상하게 당연한 선택처럼 느껴졌다.
이용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깊이 잠들었다가 추가 요금이 붙는 건 싫어서 끝나기 조금 전에 알람을 맞췄다. 책을 돌려놓고 신발을 신을 시간까지 남겨둔 계산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깨워달라고 할 필요도 없고, 계속 화면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었다. 알람 한 번이면 편히 쉬고 제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리 앞에는 가림막이 있었고 옆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혼자 있는 공간처럼 느꼈다. 실제로는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작은 대화가 들리는 정도의 거리였다. 휴대폰은 쿠션 옆에 뒀고 알람 음량은 집에서 쓰던 그대로였다. 깨어 있을 때는 낮은 말소리로도 충분한 장소였는데, 잠든 나를 깨우는 소리는 얼마나 클지 확인하지 않았다.
옆 칸에서 책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휴대폰이 울릴 때 나는 생각보다 깊이 잠들어 있었다. 눈을 뜨자 쿠션이 얼굴 가까이에 있었고 익숙한 멜로디가 바로 옆에서 나왔다. 휴대폰이 보이는데도 손을 뻗어 화면을 누르는 데 한 박자씩 늦었다. 그 짧은 사이에 옆 칸에서 책을 탁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가림막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고 나도 얼른 몸을 일으켰다.
알람을 끄고 작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옆자리 두 사람 중 한 명은 웃으며 괜찮다고 했지만 다른 한 명은 쿠션에 기대 눈을 비비고 있었다. 읽고 있던 사람만 방해한 게 아니라 쉬고 있던 사람도 깨운 것 같았다. 나는 원래 일어나려던 시각에 일어났지만, 옆 사람은 그럴 계획이 없었을 것이다. 휴대폰 화면에 남은 시간이 표시돼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가려고 책을 모으는데 순서도 잘 안 잡혔다. 어느 책을 어느 서가에서 가져왔는지 평소라면 금방 기억했을 텐데 그날은 표지만 계속 봤다. 쿠션을 정리하고 빈 컵을 들고 일어나면서 괜히 발소리까지 조심했다. 자리에 더 머무르며 여유 있게 마무리할 수도 있었지만 빨리 나가고 싶었다. 편히 쉬자고 맞춘 알람 때문에 남은 몇 분을 쫓기듯 쓰고 있었다.
계산대에서 직원이 이용 시간을 알려주었다. 추가 요금은 없었다. 원했던 결과는 얻은 셈인데 아깝게 느껴지는 것이 따로 있었다. 읽다 만 책의 마지막 몇 장과, 나 때문에 쉬다 깬 사람의 오후였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펴며 다음에는 자리를 빌린다는 것과 주변 소리를 마음대로 낼 수 있다는 것을 혼동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림막 안에서는 혼자인 것 같았지만, 알람 소리까지 혼자 쓰는 것은 아니었다.
가림막이 있어도 소리까지 내 자리에 머물지는 않았다
만화카페 자리는 눈앞이 가려져 있어서 편했다. 바깥에서 누가 지나가도 바로 마주치지 않았고 책을 쌓아두면 작은 영역이 생겼다. 나는 그 편안함을 소리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칸의 대화를 들었던 것처럼 내 알람도 칸막이를 넘었다. 공간을 혼자 쓰는 느낌과 실제로 소리가 퍼지는 범위가 다르다는 사실을 그날은 뒤늦게 알아챘다.
이용 시간 알람은 여전히 필요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거나 잠깐 쉬는 것이 그곳에 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계속 시계를 보며 남은 분을 세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음에는 알람을 없애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전달되게 해보기로 했다. 원하는 건 매장에 종료 시각을 알리는 일이 아니라 내가 책을 덮을 때를 알아차리는 일이었다.
집에서 이어폰 알람을 짧게 시험해봤다. 넨네에서 소리를 들어보고 휴대폰은 손에 닿는 곳에 둔 채 누워봤다. 옆으로 기대었을 때 귀가 불편하면 자세나 이어폰을 바꿨다. 잠든 사이 빠질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했다. 편하게 쉬고 싶어서 쓰는 방법이므로, 억지로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알람만 믿고 눕는 것은 내게 맞지 않았다.
시간도 조금 다르게 잡았다. 이용 종료에 딱 맞추기보다 책을 반납하고 물건을 챙길 여유를 남겼다. 눈을 뜨자마자 급히 나가면 작은 소리를 내기 더 쉬웠다. 알람을 멈추고 현재 시각을 확인한 다음 남은 페이지를 정리하면 됐다. 가게마다 이용 규칙이 다르니 낮잠을 자도 되는 자리인지 먼저 살피는 것도 포함했다. 내 편안함을 장소의 규칙과 함께 맞추고 싶었다.
다음에는 책갈피를 끼울 여유가 있었다
몇 주 뒤 다시 갔을 때도 안쪽 자리를 골랐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기 전에 이어폰 연결과 배터리를 확인했다. 책을 읽다가 졸리면 무작정 버티지 않고 짧게 쉬기로 했다. 알람은 나갈 준비를 시작할 시간에 맞췄다. 자리 옆에는 휴대폰과 케이스만 두고 나머지 물건은 가방에 모았다. 일어나서 무엇부터 집어야 할지 헷갈리지 않게 해둔 것이다.
신호를 들었을 때는 몸을 일으켜 휴대폰을 멈췄다. 옆 칸에서는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계속 났다. 나는 마시다 남은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책에 표시해둔 부분을 확인했다. 당장 나가야 한다는 압박이 없으니 마지막 장면도 조금 읽을 수 있었다. 눈만 붙였을 뿐인데 남은 오후가 아까처럼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쉬었다가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서가에 꽂을 때 표지를 다시 봤다. 지난번에는 민망해서 서둘러 반납하느라 이야기의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도 흐릿했다. 이번에는 다음에 이어 읽을 권수를 휴대폰 메모에 적었다. 계산대까지 가는 길에 작은 대화와 컵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매장이 완전히 조용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내 알람이 필요한 공간도 아니었다. 그 정도의 차이는 이제 몸으로 알 것 같았다.
만화카페에서 얻고 싶었던 건 책과 잠깐의 쉼이었다. 시간을 잊고 싶어서 간 곳에서 남은 시간 때문에 불안해할 필요는 없었다. 나를 깨울 신호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이용 시간을 맞출 때 내가 일어나는 순간 다음에 무엇을 할지도 함께 떠올린다. 책을 덮고 쿠션을 정리하고 조용히 나오는 작은 순서까지가 내가 빌린 시간의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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