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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 분 휴식의 끝

고속버스 휴게소에서 혼자 남을 뻔한 썰

휴게소에서 잠깐 쉬라는 말이 들렸다. 버스 번호는 외웠는데, 돌아갈 시간은 머릿속에서 느슨해졌다.

버스에서 내려야 비로소 피곤해지는 날

고속버스가 휴게소에 들어왔을 때 나는 잠에서 막 깬 상태였다. 기사님이 십오 분 쉬었다가 출발한다고 안내했다. 사람들은 물을 사거나 화장실에 가려고 하나둘 내렸다. 나는 오래 앉아 있느라 굳은 다리만 펴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에도 방금 들은 “십오 분”이 머릿속에 또렷했다.

버스가 선 자리를 기억하려고 기둥 번호와 차 번호를 함께 봤다. 주변에는 비슷한 색의 고속버스가 여러 대였고, 탑승객들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매점에서 따뜻한 음료 하나를 샀다. 차 안에서는 몸이 접힌 채로 계속 졸렸는데, 밖에 나오니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조금 살 것 같았다.

돌아가기 전까지 시간이 남은 듯해 건물 앞 벤치에 앉았다. 휴대폰을 열어 알람을 맞추려다 옆의 사람들을 봤다. 조용히 먹을 것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 아이 손을 잡고 버스를 찾는 사람, 나처럼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이 있었다. 여기서 큰 벨소리가 울리면 괜히 모두가 쳐다볼 것 같았다. 알람은 나중에 맞추자고 생각하며 화면을 껐다.

음료 뚜껑을 잡은 채 버스 쪽을 바라봤다. 몇 대가 들어오고 몇 대가 떠났다.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차가 반복해서 움직이니 내가 탄 버스가 어디 있는지 점점 헷갈렸다. 조금 전에 외워 둔 기둥 번호도 음료를 마시고 나니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시간은 아직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마음이 가장 위험했다.

나는 벤치에 등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제대로 잘 생각은 없었다. 눈을 뜬 채 있으면 바람에 눈이 시렸고, 몇 초만 감으면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고속버스에서 이어진 졸음은 밖에서도 끊기지 않았다. 휴게소 방송과 사람들 발소리가 멀어지는 순간이 있었고, 음료가 손에서 기울어 손등에 닿자 화들짝 깼다.

어느 버스였더라

화면을 보니 출발까지 남았다고 생각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 종이컵을 급히 버리고 버스가 있던 쪽으로 걸었다. 걸을수록 발이 빨라졌다. 기둥 앞에 내가 기억한 색의 버스가 서 있었지만 번호는 달랐다. 한 칸 옆에도 비슷한 차가 있었다. 창 너머로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도 어느 차인지 바로 알 수 없었다.

그때 멀리서 내가 탄 버스의 번호가 보였다. 기사님은 차 옆에서 마지막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붙잡고 뛰어갔다. 계단을 올라 원래 자리에 앉자마자 문이 닫혔다. 옆자리 승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한동안 숨을 고르느라 앞좌석 손잡이만 봤다. 나 때문에 출발이 늦어진 것은 아닌지 계속 신경이 쓰였다.

버스가 다시 고속도로에 올랐을 때 휴대폰의 시각을 여러 번 확인했다. 만약 음료가 손에 닿지 않았다면, 혹은 기둥 번호를 아예 잊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짐은 버스 안에 있었고 나는 낯선 휴게소에 혼자 남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간신히 탔다는 사실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돌아보면 휴게소에서 필요한 것은 소리 큰 알람이 아니었다. 십오 분 뒤를 기다렸다가 알려 주는 작은 신호였다. 출발 시각에 딱 맞춰 울리게 하면 이미 늦으니 몇 분 앞당겨야 한다. 그 알람이 이어폰으로만 들린다면 벤치에 앉아 쉬면서도 주변 사람의 짧은 휴식까지 깨우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알람이 내 버스를 찾아 주지는 않는다. 차 번호와 주차 위치를 다시 확인하고, 휴게소 안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버스가 예상보다 일찍 움직이는지, 휴식 시간이 바뀌는지도 사람마다 확인할 몫이다. 이번에는 “십오 분쯤”이라는 막연한 감각 하나에 그 모든 일을 맡겨 버렸다.

십오 분이 짧아지는 방식

휴게소에서 일어난 일을 집에 도착해서 다시 이야기하니 가족은 “버스 번호라도 찍어 두지 그랬어”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기둥 번호와 차 번호를 한 번 외웠다는 이유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잠깐 졸고 난 뒤에는 비슷한 차가 여러 대 보이는 것만으로도 확신이 사라졌다. 기억은 피곤할수록 믿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십오 분’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애매했다. 버스가 완전히 멈춘 때부터인지, 승객이 내릴 때부터인지, 기사님이 안내를 마친 때부터인지 나는 따져 보지 않았다. 매점 줄에 서 있던 몇 분도 휴식 시간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바깥 공기를 마시며 쉬는 시간은 겨우 남은 부분인데, 나는 처음 들은 십오 분을 아직 통째로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기억나는 장면 중 가장 선명한 것은 다른 버스의 문 앞에서 멈춘 순간이다. 번호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이미 찾았다고 생각했다. 창문 모양도 비슷했고, 앞 유리의 행선지도 얼핏 맞아 보였다. 피곤한 사람에게는 급한 마음이 빈칸을 제멋대로 채운다. 그 몇 초 때문에 내가 탄 버스가 바로 옆에 있어도 찾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

돌아갈 시간을 알려 주는 알람은 그런 실수를 모두 해결해 주지 못한다. 대신 서두르기 전에 확인할 여유를 준다. 출발 직전에 울리는 알람이라면 차 번호를 틀렸을 때 바로잡을 시간이 없다. 몇 분 일찍 울리도록 해 두면 컵을 정리하고, 메모한 주차 위치를 보고, 실제 버스 앞 유리의 번호를 대조할 수 있다.

휴게소에는 다른 사람도 각자의 십오 분을 쓰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아이를 재우려고 잠깐 앉아 있고, 누군가는 통화를 마친 뒤 숨을 고른다. 내 휴식이 끝났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알람 소리를 들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어폰으로만 짧게 알려 주면 일어나는 사람은 나 하나면 된다. 그 방식이야말로 휴게소의 소란 속에서도 자기 시간을 지키는 데 어울렸다.

나는 나중에 음료를 사던 장면도 떠올렸다. 매점 직원은 빠르게 주문을 받았고, 앞사람은 계산이 끝나자 급히 뛰어 나갔다. 다들 서두르고 있었는데 나만 시간이 많다고 느꼈다. 알람을 맞추기 전에 쉬기 시작하면 주변의 속도와 내 감각이 금방 어긋난다. 휴식은 버스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지금은 고속버스에서 내릴 때 시각을 먼저 확인한다. 버스 번호와 위치를 남기고, 돌아갈 시각보다 앞서 개인 알림을 맞춘다. 그런 뒤에야 매점으로 걸어간다. 순서를 바꾸는 데는 몇 초밖에 안 걸리지만, 그 몇 초가 벤치에서 쉬는 마음을 훨씬 편하게 만든다.

다음 휴게소에서의 몇 분

한참 더 달린 뒤 버스가 다른 휴게소에 들렀다. 나는 내리기 전에 차 번호와 기둥을 휴대폰 메모에 적었다. 기사님이 말한 시간을 확인한 뒤, 예정된 출발보다 여유 있게 돌아가도록 타이머를 맞췄다. 이어폰을 연결하고 짧게 알림을 시험하니 소리는 내 귀에서만 들렸다. 남은 시간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이번에는 매점에서 물만 사고 바깥으로 나왔다. 벤치에 앉아 주변을 구경하며 다리를 쉬게 했다. 버스 번호를 메모해 둔 덕분에 지나가는 차마다 내 차인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조용한 알람이 울렸을 때는 아직 사람이 조금 남아 있었고, 걸어서 돌아갈 시간도 충분했다. 버스 앞에 서서 차 번호를 다시 맞춰 본 뒤 천천히 올라탔다.

차에 앉아 보니 옆자리 승객은 아까와 같은 자세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내 작은 소동을 기억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나는 첫 번째 휴게소에서 뛰던 내 모습을 기억했다. 이동 중의 휴식은 길이가 짧을수록 더 빨리 지나간다. 그래서 다음에는 쉬기 시작할 때부터 끝나는 순간을 준비한다. 그렇게 해야 남은 길도 편하게 갈 수 있다.

넨네

잠깐 내렸다면, 돌아갈 시간도 챙기기

휴게소에서는 버스 위치와 출발 시간을 먼저 확인하고, 여유 있게 돌아올 알람을 이어폰으로 받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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